전체 29건
2015년 스리랑카 마타라 (23회)
일시: 2015년 7월 6일~13일
장소: 스리랑카 마타라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김성오 교수, 윤준호 교수, 김성태 교수, 임문우, 이기섭, 박영진, 박경준, 한원섭, 이민형, 박준호, 우상엽, 구본진, 이규화, 유성훈, 유원영, 손효주, 김별이라, 김욱성, 안윤수, 이신애, 임동한, 최혜진, 김현주, 유지흔, 전지훈, 홍석우, 김다영, 이범준, 장한솔, 김지연, 박지성, 정아인, 한유빈, 김수정, 박주연, 김진우, 박원근, 박주완, 윤채린
김별이라 (43회 졸업, 연세대학교치과대학병원 전공의)
2015년 여름, 졸업을 위한 수많은 원내생 진료실 케이스를 잠시 접어두고 나를 포함한 본과 4학년 6명은 스리랑카로 떠났다. 치과대학 학생 13명, 간호대학생 5명, 간호사 1명, 수련의 포함 졸업생 선배님 14명, 가족대원 5명 등 총 40명이 백형선 교수님과 김성오 교수님을 선두로 선교에 나섰다. 밤 비행기를 타고 7월 7일 새벽에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 온갖 진료 장비를 싣고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 달려 이름도 생소한 마하트라에 도착했다.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전의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와 다소 다른 환경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대원들이 다함께 머무를 곳이 없어 몇 개로 숙소를 나눴는데, 에어컨이 없는 것보다 와이파이가 안 되는 것에 당황하며 전파를 찾아 헤매는 학생들이 많았다.
진료지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출발 전에 준비하면서 현지 선교사님들에게서 사진과 도면을 받아보기는 했지만 도로 주변에, 그것도 사방으로 뚫린 길쭉한 T자 모양의 공간에 어떻게 진료장비를 설치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진료의 노하우가 축적된 OB 선배님들의 지도 아래 일사불란하게 체어와 기계들이 설치되었고, 아무것도 없었던 빈 공간에 그럴듯한 치료소가 세워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금방 구름같이 환자들이 몰려들었는데, 이번에는 뜨거운 날씨가 우리를 공격했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야외 공간에서 진료가 계속되자 금방 지치고 체력적으로 힘든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이튿날부터는 진료팀과 백업팀으로 나눠 진행했고, 뒤쪽에 휴게공간을 만들어 과일과 물을 준비해 두었다.
밀려드는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진료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운영 중인) 마취방사선, 일명 ‘마방과’를 두어 필요한 경우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 곳에서 마취를 하고 체어로 이동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그동안 쌓아온 에셀의 노하우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지혜로 힘든 상황을 개선해나가며 날이 갈수록 진료가 더욱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날씨가 덥고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 점심은 현지 도시락으로 해결했는데, 누군가가 발견한 길 건너의 ‘피자헛’은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식후 피자헛에서 즐기는 아이스크림은 이제껏 먹어본 것 중 가장 달고 맛있었다. 도시락에서 탈출해 즐기는 피자와 콜라, 에어컨 바람과 깨끗한 화장실에 다시 사기가 충만해져서 오후 진료에 다시금 힘을 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열악한 환경에도 40명의 대원들 중 크게 아픈 사람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던 것이 큰 은혜였다.
이렇게 5일간의 일정을 마치면서 총 환자 수 954명에 1,084건의 진료 건수를 기록했다. 본과 2학년 때인 캄보디아에서는 석션 기계를 잡는 것도 어색했고, 3학년인 베트남에서는 처음으로 마취와 수복 치료를 경험해 보았다면, 졸업을 앞두고 간 스리랑카 진료는 선배님들을 지켜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능적인 배움뿐 아니라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상담과 신앙인의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치과의사로서 일을 하는 입장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더운 여름에 소중한 휴가와 경제적 수익을 헌납하고, 아니 오히려 자기 돈을 내서 미지의 나라에 매년 의료선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이 더욱 멋지게 느껴진다.
지금은 사진들을 찾아가며 스리랑카 후기를 쓰고 있는데, 솔직히 그 무엇보다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죄송하게도 치열한 진료사역이 아닌 ‘스리랑카의 밤하늘’이다. 스리랑카의 넷째 날 밤, 별을 촬영하러 간다는 진료부장을 따라 나를 포함한 학생들 몇이 숙소에서 가까운 해변으로 산책을 가게 되었다. 그때 밤하늘 가득히 쏟아져 내릴 듯한 수많은 별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은 서울의 밤하늘을 볼 때도 스리랑카가 떠오른다. 졸업 전 내가 되고자 했던 치과의사의 모습, 그 당시 나의 고민과 목표, 선배님들의 따뜻한 조언과 풍성한 주님의 은혜... 모두모두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새길 것이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추억이 많은데 글솜씨가 부족해 아쉽기만 하다. ‘에셀 배지’를 배부해 핑크와 블랙 멤버로 나누었을 때 블랙을 동경했던 일, 매일 아침 진료 시작 전부터 진행되던 현지 국회의원 뿌티끄의 일장 연설, 숙소 화장실 변기에서 엄청난 괴생물체가 출현했던 일, 아침저녁 숙소 식사시간에 항상 학생들에게 먼저 줄을 양보하시던 선생님들의 따스함,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며 소리 높여 찬양했던 시간들... 모두 다 감사하고 소중하다. 언젠가는 나도 자녀들을 데리고 어엿한 치과의사로 다시 여름 단기선교에 참여할 날을 열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긴 시간 동안 에셀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글을 마친다.
2014년 베트남 빈증성 (22회)
일시: 2014년 7월 6일~13일
장소: 베트남 빈증성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김성오 교수, 윤준호 교수, 임문우, 이기섭, 이근형, 박경준, 이민형, 우상엽, 구본진, 이규화, 고지영, 이혜원, 권순모, 김민정, 김민태, 배지은, 이준구, 이호성, 김별이라, 김욱성, 박성기, 안윤수, 이신애, 임동한 최혜진, 김정태, 유지흔, 최유빈, 한예슬, 박지성, 정아인, 김수정, 이유진, 박주연, 우승현, 윤하린, 김채린
윤준호 (24회 졸업, 국민건강보험일산병원 보철과 교수)
1996년 본과 4학년 때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다녀온 이후, ‘올해는 나도 가야지’, ‘내년엔 꼭 가야지’ 하며 미루기를 무려 열일곱 번... 워낙 바쁜 일상에 세월의 빠름이 더해지다 보니 ‘잠시’가 17년이 되고 만 것이었다. 해외진료는 나의 오래전 기억으로 멈춰 있었는데, 막상 새롭게 합류하려니 에셀 팀의 변화된 진료 상황을 몰라 낯설기도 했다. 또한 개업해 있는 상황이 아닌 상태로 일산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타 개업의 선생님들처럼 설비에 도움을 주기도 어려워서 팀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서 직접 부딪쳐 보니 우리 때처럼 학생들의 준비는 역시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차이가 나는 것은 훨씬 규모가 커졌고, 체계가 잘 잡혔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때는 치과의사가 백 교수님과 임문우 선생님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치과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치과의사만 10명이 넘고 총인원 40명에 달하는 큰 팀이 되었으니 말이다.
대장이신 백형선 교수님과 다시 뭉친 어제의 용사 선배님들, 과거의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가고 있는 패기 넘치는 후배들, 비록 열매와 결실은 더디어도 묵묵히 베트남 땅을 섬기는 선교사님들, 통관과 짐 운반, 통역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빈증성 문화센터와 공산당의 간부들, 치과 치료의 고통과 공포를 이겨내려고 치맛자락을 꼭 잡으며 울음을 참았던 고아원 아이들....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하루하루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소중한 만남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비록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할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결실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우리의 만남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믿기 때문이다. 벌써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수줍은 미소 속에 강인한 정신력이 깃든 베트남 사람들의 향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코 끝에 남은 듯하다. 기억에 남는 이 사진은 진료에 동행하면서 큰 도움을 주었던 딸들과 아빠들의 사진이다. 만약 순서를 섞어 놓았더라도 누가 누구의 딸인지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 주고 있다.
동행한 딸아이에게는 처음 참여하게 된 해외진료라서 의미가 컸는데,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고 아름다운 것인지 에셀 팀원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참교육의 현장이었기에 더더욱 의미가 있었다. 덕분에 사춘기 딸아이와 7박 8일을 함께 하면서 더욱 사이가 돈독해진 것 같다. 좋은 기회를 허락해 주신 여러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3년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21회)
일시: 2013년 7월 7일~14일
장소: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김성오 교수, 김성태 교수, 임문우, 이기섭, 이근형, 이민형, 박준호, 우상엽, 구본진, 이규화, 고형석, 곽계명, 김규남, 김근희, 김치훈, 손효주, 이고은, 권순모, 김민정, 김민태, 배지은, 이준구, 김별이라, 최혜진, 김현아, 문혜미, 박지현, 송유지, 이채은, 홍지수, 김진우, 박주완, 이영서, 김준수, 우승현
김민정 (42회 졸업, 미소담치과 부원장)
치과대학생으로서 보낸 시간 동안 체득한 하나의 가치관이 있다. 내가 아는 것이 손끝에서 나타나려면 직접 부딪치고 때론 깎이는 인고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임상에 적용해가며 익히는 한편, 나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 치과대학생에게 주어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가 활동하고 있는 에셀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값진 경험을 주고 있다.
2013년의 진료지는 캄보디아의 항구도시 시아누크빌이었다. 학기말고사가 끝났지만 에셀 재학생들은 더 분주해졌다. 출발하는 날을 카운트다운하며 서로가 역할을 나누어 움직여야 했다. 우리가 타게 될 캄보디아 프놈펜 행 비행기는 작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더욱 꼼꼼히, 최대한 간소하게 짐을 꾸렸다. 하지만 진료를 위한 장비를 직접 가져가야 하는 치과진료의 특성상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솔하시는 백형선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마지막까지 상의해 짐을 줄여 나갔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료지에서보다 출발하기 전 일주일이 가장 어렵고 힘이 드는 것 같다. 하지만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도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기대감으로 바뀌어갔다.
캄보디아의 날씨는 생각했던 것만큼 덥지 않았다. 현지 선교사님은 평소보다 기온이 낮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시아누크빌에 머무르는 동안 그런 날씨가 계속되었다. 진료 장소로 우리가 묶었던 숙소의 넓은 회의실 홀이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진료한 장소 중에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숙소와 함께 있어서 저녁식사 후에도 진료장소 정리나 모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실내였기 때문에 해가 져도 체어의 조명으로 날벌레가 날아들 걱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여건 덕분에 당초 우리가 계획한 진료 시간인 오후 5시 반을 훌쩍 넘긴 7시 반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진료는 강행군이었다. 아침 8시 반에 예진을 시작했는데, 진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지역 주민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제한된 인력과 자원으로는 하루 250명 정도로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250개의 번호표는 아침 9시 반이면 동이 날 정도. 안타깝지만 더 이상 받을 수 없어서 돌려보낸 환자도 많았다. 그만큼 우리의 진료는 그들에게 절실한 것이었다. 환자들의 상황을 보니 심각한 우식으로 발치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내에 치과가 있다지만 심각할 정도로 우식이 진행되어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치료 수준도 높은 편은 아닌 듯했다. 심미적으로 문제가 되는 앞니 우식 환자도 많았는데, 환자가 원하는 치료와 우리가 판단하는 꼭 필요한 기능적 치료 부위가 달라서 생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날마다 하루 10시간 가까운 진료를 했기에 몸은 고단했지만 대원들 모두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진료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진료가 휴식보다 더 달콤했다면 조금 과장일까?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녀도 피곤에 지치기보다 무언가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료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감동이 분명히 있다. 진료를 받고 가는 현지인들의 미소를 볼 때, 개원의로 계시는 선배님들을 직접 어시스트하며 그분들의 인생의 지혜와 깊이를 마주할 때, 동료들을 도와 땀 흘려 일할 때 그 곳에서의 시간들이 나를 만들고, 또 나를 빚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치과 지식이 손끝에서 나타나려면수련 기간이 필수적인 것처럼, 인생의 철학과 지혜가 한 사람을 형성하는 데는 직접 실천하고 도전해보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린 땀의 가치와 그것이 주는 행복감이란 에셀의 대원으로서 해외 진료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만한 것들이었다. 내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들여 선교를 왔기 때문에 내가 베푸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생이 달라지는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그 이후에도 멋진 우리 팀 ‘에셀’과 함께 하고 싶다.
2012년 말레이시아 텔루피드 (20회)
일시: 2012년 7월 8일~15일
장소: 말레이시아 텔루피드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김성오 교수, 임문우, 이기섭, 박영진, 이민형, 박준호, 우상엽, 구본진, 박성우, 최영준, 전혜림, 이규화, 박준희, 신민경, 정현정, 서승원, 김근희, 김치훈, 고형석, 곽계명, 김지혜, 김규남, 이고은, 하애나, 이준구, 김민정, 강정아, 김지윤, 박지현, 유리호, 홍지수, 임아린, 박윤황, 박주완, 이영서
박준호 (19회 졸업, 연세베스트덴치과 원장)
이때는 보루네오 섬에 위치한 사바 지역 내륙에 위치한 텔루피드로 갔다.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 코타키나발루까지 비행기로 간 뒤 내륙으로 약 5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나로서는 전년도에 이어서 두 번째 참여하는 해외진료였다. 공교롭게도 팔라우나 코타키나발루 같은 곳은 모두 유명한 관광지였으니 ‘요즘은 참 좋은 곳으로 진료를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공항에 내린 것은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우린 트럭에 장비를 싣고 버스에 몸을 실은 후 곧바로 텔루피드로 향했다. 하룻밤의 숙박비와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해외 진료팀이 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쭉 뻗은 고속도로가 아닌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 잠시 정차를 했을 때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또 얼마를 달렸을까, 잠에서 깨니 어느새 먼동이 트고 있었고 우리는 마을에 도착을 했다. 우리가 밤새 달려온 길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해발 4,000m의 키나발루 산을 끼고 온 길이었다.
성공회 선교센터로 사용하는 곳이 진료 장소이자 숙소였다. 가족을 동반한 대원의 경우, 차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위치한 조그만 호텔에서 지내게 되었다. 작은 산골마을 호텔 로비에서 한국 가수 이승기를 좋아한다는 말레이시아 젊은이를 보면서 한류의 위세를 느낄 수 있었다. 호텔방에는 창문이 없었고, 이슬람 국가답게 천장에 메카의 방향을 표시한 화살표가 있었다.
오전에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본격적인 진료 준비를 했다. 저녁에는 환영 예배와 함께 말레이시아 민속공연을 즐겼다. 진료 장소는 사방이 뚫려 있어 팔라우 때처럼 에어컨은 기대할 수 없었고, 기둥에 매달린 선풍기가 전부여서 더위와 습도가 우리를 괴롭혔다. 가끔 낮에 내리는 시원한 빗줄기는 더위를 식혀주었지만 습도를 높였다. 또 우리를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벌레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환자들이 많아서 예정시간보다 늦게까지 진료를 했는데, 사방이 뚫린 건물 안으로 조명을 향해 벌레들이 몰려들어 때론 시야확보를 어렵게 했고, 때론 환자 입에 들어가는 바람에 다음 날부터는 해지기 전까지로 진료시간을 한정했다.
그때 큰아이가 진료에 함께 했다. 하지만 기말고사가 늦게 끝나 같이 오지 못하고, 혼자서 후발대로 합류했다. 덕분에 진료에 필요한 부족물품을 챙겨올 수 있었다. 중2가 그곳까지 혼자 오다니....
워낙 치료할 부위가 많아서 기능을 고려하면 어금니를 치료해줘야 했지만, 환자들은 아무래도 앞니부터 치료받기를 원했고,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기 위해 한 환자에게 한 가지 치료만 베풀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항상 진료지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무사히 진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키나발루 산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의 코타키나발루 관광 중 씨티 투어를 하는 동안에는 비가 왔지만 인근의 섬까지 보트를 타고 가서 식사를 하고 스노클링과 패러세일링을 즐기며 그동안의 피곤을 씻을 수 있었다. 스노클링은 팔라우가 나았지만.
우리 눈엔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뒤늦게 혼자서 합류한 아들은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환히 웃어 보이는 주민들을 보고서 감사를 배웠다고 했다. 나뿐 아니라 참석한 모두가 동일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의 행동이 그들에게 조용한 파동을 일으켰으리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머물기를 바랐던 사역이었다.
2011년 팔라우 (19회)
일시: 2011년 7월 7일~15일
장소: 팔라우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김성오 교수, 임문우, 이기섭, 구본찬, 박영진, 이근형, 이민형, 박준호, 우상엽, 구본진, 유성훈, 표세욱, 정서연, 이규화, 강승현, 김슬기, 유원영, 이용환, 이예원, 임선영, 지운, 김정현, 박준희, 신민경, 정현정, 김근희, 김치훈, 권효정, 권효진, 전경진, 황도현, 김지윤, 이승혁, 임아린, 구권모, 김진우, 박세진
이민형 (19회 졸업, 연세연우치과 원장)
팔라우는 남태평양 서부의 숨겨진 보물이라고 불리는 작지만 아름다운 섬나라이다. 아직 개발 중인 관광지로 바다 색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마닐라에서 제일 큰 한인교회 담임 김은호 목사님 소개로 정상진 선교사님을 알게 되어 가게 된 곳이었다. KOICA 소속으로 국립병원의 내과의사 손창남 선생님이 우리 팀의 모든 일정을 챙겨주셨다. 우리는 한 문화센터20에서 진료를 했는데, 에어컨이 있어서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었다. 건물의 전기 용량이 작고 현지에서 대여한 컴프레서의 상태가 나빠 일시적 정전이 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때까지의 진료환경 중에서 최고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진료 환자로는 앞서 백 교수님의 글에 나오는 오토바이 사고로 턱에 골절상을 입은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현지 원주민들과 외국인 근로자들, 대개 필리핀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6일 동안 진료했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야간진료까지 했다. 현지 치과의사들이 와서 진료내용을 참관했고,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고위층도 방문했다. 의료보험이 안 되어 진료비 때문에 병원을 갈 수 없었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며 현지 신문과 방송에도 에셀 팀의 활동이 소개되었다.
우리 팀은 6일간 875명에게 1,090건의 진료를 했다. 특히 치주치료 274건은 대부분 치아 착색을 제거하는 스케일링이었는데, 그 착색이 아스콘 같은 것이라 제거가 힘들었다. 한국에서 한 스케일링에 비하여 시간이 두 배 이상 소요되는 아주 고된 일이었다. 그래도 보람이 되었던 것은, 마지막 날 저녁식사에 팔라우의 존슨 토리비옹 대통령이 참석하여 우리에게 감사장을 준 일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숙소를 한 번 옮기게 되었는데, 두 번째 숙소는 바닷가라서 경치가 최고였다. 대원들의 하루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선교 기간에 동남아 선교 사역을 사명으로 하는 한나선교회의 선박 한나호가 마침 팔라우에 와 있었는데, 초대를 받고 직접 배에 올라 저녁을 같이 했다. 우리는 일주일 정도의 단기선교지만 한나호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몇 개월 혹은 몇 년씩 무보수로 선교를 한다는 것이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가까운 섬에 가서 머드팩과 스노클링을 즐겼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바다에 나갈 때마다 하루 단위로 한 사람당 얼마간의 세금을 정부에 내야 하는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한국 관광업체에서 팔라우 공화국 정부에 제안한 것이라는데, 사업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리 좋은 인상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서 좀 민망했다. 작은 나라지만 대통령도 만나고, 전 인구의 5%나 되는 사람들을 치료해준 기억은 남다르다. 그 작은 섬나라 사람들이 다시는 다른 나라에 예속되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건강과 기쁨을 누리면서 참된 복음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2010년 필리핀 안티폴로 (18회)
일시: 2010년 7월 12일~18일
장소: 필리핀 안티폴로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최성호 교수, 김성오 교수, 김성태 교수, 임문우, 이기섭, 박영진, 구본찬, 이근형, 조기수, 구본진, 우상엽, 유성훈, 표세욱, 곽은정, 이미림, 이상희, 이은웅, 양지우, 장선미, 전혜림, 김슬기, 유원영, 이혜원, 임선영, 지 운, 정현정, 안영은, 김 설, 김윤정, 서민경, 안정은, 이지애, 크리스틴 백, 최명락, 이승혁, 구권모, 김진우, 조아현
이기섭 (13회 졸업, 아동치과 원장)
이때 의료선교 사역지였던 안티폴로시티는 마닐라에서 30km 동쪽에 있는 도시로 1년 전에 큰 수해를 입은 상태였다. 주민들 대부분이 최저소득층이었기 때문에 의료적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지역이었다.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1986년 1월 강원도 영월 문곡교회 진료 이후 해외진료에 처음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무려 14년여만에 다시 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소식만 듣고 멀리서 기도하며 언젠가 나도 참여할 날을 기다려 왔는데 드디어 그날이 온 셈이었다. 필리핀에는 골프 여행으로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미션을 위해 방문할 줄이야... 그것도 중3 아들 둘과 함께.
39명 대원들과 함께 한 6박 7일의 의료사역 기간 동안 받은 가슴 벅찬 은혜와 감동이 6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도 생생하다. 마치 1981년 예과 2학년 여름방학 때 충남 태안으로 첫 전도여행을 갔던 그때처럼. 복잡하다는 정도로만 알았던 엄청난 숫자의 이민 가방과 박스들의 세관 통과를 무사히 끝내고 사역지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장비의 설치를 진행했다. 돌아보면 무엇보다 집밥 같은 식사를 매일해주신 선교사님 사모님 덕분에 매일매일 열심히 힘을 내서 진료에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었다.
선교사님이 많은 준비를 하셔서 일생에 단 한 번도 치과진료를 받지 못한 빈민촌의 많은 사람들을 버스로 태워 왔다. 필리핀의 가난한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현지 간호대 학생들이 타갈로그어로 통역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둘째 날 거센 비바람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숙박 중인 호텔 안 화분들이 두 동강 날 정도의 거대한 태풍으로 전기까지 나갔다. 그래서 오전엔 주로 발치만 했는데, 오후에 현지 장로님이 제너레이터를 구입해주신 덕분에 그때 부터 사흘간 무려 1,200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서울에서도 안 해본 야간진료까지 했다. 저녁식사 때는 정전 덕분에 은혜로운 촛불기도회(?)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폭탄을 맞은 듯, 구강상태가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너무나 환자가 많아 공평하게 한 사람당 한가지만 치료를 하기로 정하고, 주로 앞니 레진 충전과 신경치료를 하느라 무더운 날씨 속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만족스럽게 진료를 받은 환자들이 고마움을 표하며 자신 있게 ‘스마일~’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불행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감사의 추억’으로 만들면 불행으로 여겨질 일도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 이때 필리핀 선교는 누군가를 도우면 나 자신도 큰 힘과 위로를 받는다는 걸 다시 한 번 체험하는 ‘감사의 여행’이었다. 구슬땀 없이는 불가능한 사역임을 알기에 백형선 대장님의 리더십과 학생들의 아름다운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39명의 에셀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했던 6박 7일 동안의 귀한 시간들이 ‘안티폴로에서의 천국잔치’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