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료 갤러리

믿음의 나무 에셀

1998년 인도 캘커타 (6회)

작성자
yonseiessel
작성일
2023-08-22 17:52
조회
152
인쇄
일시: 1998년 7월 12일~19일
장소: 인도 캘커타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전혜만, 임문우, 한승훈, 구본진, 김성태, 권병기, 박성헌, 이재익, 서예준, 지성훈, 채규호, 심우현, 강민재, 주진희, 문현정, 박민나, 박수진, 한지연, 임지인





















 

구본진 (24회 졸업, 베스티스치과 원장)

에셀의 해외 사역은 2016년 현재 스물 넷 청년의 나이가 되었다. 1993년도 본과 1학년 때부터 자연스럽게 참여한 나는 수련의 기간 중 해외 파견, 공중보건의, 그리고 개원 등 몇 해를 제외하고는 일상처럼 동참할 수 있었기에 이제 치과 의료선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큰 것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 여러 번의 과정 중 최악의 고생길이 어디였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인도에서의 진료를 꼽을 것이다. 인도에서 살아본 분들도 인도에서의 첫 사역을 캘커타 지역에서 했다고 하면 처음부터 너무 센(?) 곳으로 갔다고 할 정도였다. 나는 그 몇 년쯤 전에 보았던 영화, 바로 그 캘커타의 인력거꾼 이야기인 <시티 오브 조이>(City of joy)를 기억하며 ‘사역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은 습하고 더워서 육신의 피곤함은 차치하고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하나하나가 문화 충격이자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았다.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에 핵무기와 인공위성을 보유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 나라지만, 최고급 벤츠가 달리는 거리를 인력거 릭샤가 함께 달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강어귀에는 시신을 화장하는 광경이 일상적인데, 그 강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흔한 풍경이다. 강가 언덕에는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집 아닌 집들이 연달아 이어져 있었고,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노숙에 지친 삶의 무게가 역력했다.

캘커타에서 버스를 타고 찬드라코나 라는 지역의 고아원에 새벽 4시 경 도착했다. 피곤한 나머지 숙소라고 알려준 건물 바닥에 침낭을 깔고 죽은듯이 잠을 청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로 옆에서 개가 함께 자고 있었고, 바닥에는 죽은 나방을 개미가 끌고 가는 장면이 보였다. 아마도 우리가 수면을 취한 곳은 창고이고, 고아원에서 키우던 개의 침실(?)이었던 모양이다. 근래에는 여관이나 호텔 등으로 숙소를 정확히 정해서 가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진료 중에도 너무 땀을 많이 흘려서 나중에는 전혜만 선생님이 소금을 조금씩 먹고 일할 수 있게 해주셨다. 지나고 보니 당시 대원들이 느꼈던 두통은 땀을 많이 흘려서 생긴 전해질 이상 반응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덥고 습한 날씨는 밤이 돼도 그대로였다. 새벽 3시경, 잠도 잘 오지 않아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샤워라도 하려고 나가보니, 백 교수님이 계셔서 다시 들어온 기억이 있다. 교수님 역시 너무 덥고 피곤한 나머지 잠을 설치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지단 감독이 현역으로 브라질을 압도했던 월드컵이 열린 해라서 그런지 창고에서 우유팩을 차며 축구 삼매경에 빠지는 이들도 있었으니... 열심히 팩을 차던 김성태 교수와 故 지성훈 선생이 기억난다. 그때 고생의 정점은 찬드라코나에서 다시 돌아오던 버스. 한국처럼 도로 사정이 좋다면 두세 시간으로 충분한 거리였다. 그런데 황당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 타이어가 빠지다니... 다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지만, 밤중에 길바닥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꼬박 밤을 새웠다. 안 그래도 피곤한 상태에서 갇혀 버린 버스 안은 모기들의 천국이었다.

화장실도 식당도 없는 상태에서 물에 탄 선식을 먹으며 버텨낸 일행이 정말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당시 멘붕 상태라 10시간이 좀 넘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중에 백 교수님이 16시간이었다고 정확히 알려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진료를 마치고 나중에 방문했던 곳은 테레사 수녀가 사역했던 ‘죽음의 집’.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이 걸인과 환자들을 돕고 있었고, 바로 앞 칼리 신전에서는 실제로 동물이 제물로 희생되어 흐르는 붉은 피가 신전 바닥을 적시면서 수많은 예쁜 꽃잎과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보기 힘들지 모를 많은 인도 사람들.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달되려면 결국 전도와 선교가 답이기에 그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의 노고가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는 어느 곳보다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한 곳이 분명하다. 언제 다시 그 땅을 밟게 될까? 아마도 하나님만 아실 것 같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