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말레이시아 사라왁 (3회)
작성자
yonseiessel
작성일
2023-08-15 22:37
조회
59

일시: 1995년 7월 31일~8월 8일
장소: 말레이시아 사라왁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임문우, 조기수, 이기주, 우상엽, 이종석, 편무성, 한승훈, 조항래, 구본진, 이석원, 이희재, 김선희, 손승룡, 김판구, 권소영











이기주 (20회 졸업, 연세덴티프로치과 원장)
사라왁은 밀림과 목재로 유명한 보르네오 섬의 한 주(州)이다. 식인 풍습을 가진 이반족이 살았던 곳으로 외세침략과 종족간의 전쟁이 많았던 질곡의 역사를 거쳤지만, 밀림과 동물들이 서식하는 태고의 원시림이 보존된 지역이었다. 이반족은 사라왁 최대의 종족으로 옛날부터 용맹스럽기로 유명했다. 이들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사람을 사냥했다고 하는데, 특히 적의 목을 많이 벤 전사를 좋아했다. 그 전통으로 이반족이 사는 집에는 사람의 해골이 걸려 있다. 그들은 주로 밀림 강변에 일명 ‘롱하우스’라고 불리는 긴 집을 짓고 집단으로 거주한다. 롱하우스는 10가구 이상이 함께 생활하도록 지은 공동주택이다. 집을 지을 때도 공평하게 일을 분담하고, 사용하는 공간도 균등하게 나눈다. 집의 규모는 대략 길이 100m, 폭 20m 내외이며 훨씬 더 긴 집도 있다고 한다.
호전적인 이반족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생전 처음 경험하는 밀림이라는 고립되고 열악한 환경에서의 진료라서 더욱 철저한 준비를 했다. 먼저 먼 곳에서 이반족을 품고 사역하시는 신 선교사님이 많은 것을 준비해 주셨기 때문에 부족한 우리지만 주님께서 감당할 능력을 주시리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의 믿음을 가졌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허술한 준비나 이동 중 발생할 수 있는 물품 분실은 사역에 치명적일 수 있는데, 이번 일정은 공항에서 차로 이동 후 다시 밀림까지 통나무배로 이동, 1차 진료 후 다시 배와 차를 타고 이동해 2차 진료를 해야 했다. 두 번의 장비 이동과 진료지 세팅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더욱이 밀림에서 대체 장비나 재료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한층 더 철저한 준비와 관리가 필요했다.
말로만 듣던 밀림은 덥고 습하며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하며 낙후돼 있었다. 어둠이 내리면 고요와 적막 그 자체였다. 후텁지근한 더위와 각종 벌레를 견뎌야 했고, 몇 대 안 되는 선풍기도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전력수급 상황에 깨끗한 물이 충분치 않아 최소한만 씻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입에 잘 맞지 않는 향신료와 부족한 식사도 어려움을 더했다. 주로 차와 비스킷만으로 간단히 식사하는 이반족이지만 특별히 손님을 대접한다며 밀림에서 귀한 쌀을 많이 준비해 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보잘것없는 것일 수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값지고 특별하다는 사실을 통해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마음이 따스하고 순진하며, 풍족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와의 만남이 용맹한 전사의 후예와 낙후되고 빈곤한 현실 사이의 절망감에 빠져있는 이반족이 주님을 만나고 영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장거리 이동으로 모두가 지치고 한계를 느꼈었지만, 그들에게 무언가 베풀고 있다는 보람과 즐거움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자 은혜임을 알게 되었다. 믿음과 간구를 통해 어려울수록 지혜를 주시고, 힘들수록 더 이길 힘을 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했다.
이쯤에서 ‘고뇌파’의 일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진료가 끝난 저녁, 원주민들이 사냥을 하고 돌아와 모여 있는 곳에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임문우, 조기수 선배, 우상엽 후배 등과 함께 가 보았다. 그때 그곳에서 그들이 건네는 고슴도치의 특별 부위를 맛보게 되었다. 영영 잊을 수 없는 비릿한 맛의 경험...그때가 바로 고뇌파, 즉 ‘고슴도치 뇌를 맛본 에셀인’의 모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어떤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주님의 깊은 뜻과 한량없는 은혜는 다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사역이 이반족의 삶에 좋은 기억과 구원의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들과 작별하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온 우리 마음속에도 더 좋은 것을 남기셨음을 믿는다. 그것을 앞으로도 면면히 이어질 우리 에셀의 전통으로 만드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한다.
장소: 말레이시아 사라왁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임문우, 조기수, 이기주, 우상엽, 이종석, 편무성, 한승훈, 조항래, 구본진, 이석원, 이희재, 김선희, 손승룡, 김판구, 권소영











이기주 (20회 졸업, 연세덴티프로치과 원장)
사라왁은 밀림과 목재로 유명한 보르네오 섬의 한 주(州)이다. 식인 풍습을 가진 이반족이 살았던 곳으로 외세침략과 종족간의 전쟁이 많았던 질곡의 역사를 거쳤지만, 밀림과 동물들이 서식하는 태고의 원시림이 보존된 지역이었다. 이반족은 사라왁 최대의 종족으로 옛날부터 용맹스럽기로 유명했다. 이들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사람을 사냥했다고 하는데, 특히 적의 목을 많이 벤 전사를 좋아했다. 그 전통으로 이반족이 사는 집에는 사람의 해골이 걸려 있다. 그들은 주로 밀림 강변에 일명 ‘롱하우스’라고 불리는 긴 집을 짓고 집단으로 거주한다. 롱하우스는 10가구 이상이 함께 생활하도록 지은 공동주택이다. 집을 지을 때도 공평하게 일을 분담하고, 사용하는 공간도 균등하게 나눈다. 집의 규모는 대략 길이 100m, 폭 20m 내외이며 훨씬 더 긴 집도 있다고 한다.
호전적인 이반족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생전 처음 경험하는 밀림이라는 고립되고 열악한 환경에서의 진료라서 더욱 철저한 준비를 했다. 먼저 먼 곳에서 이반족을 품고 사역하시는 신 선교사님이 많은 것을 준비해 주셨기 때문에 부족한 우리지만 주님께서 감당할 능력을 주시리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의 믿음을 가졌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허술한 준비나 이동 중 발생할 수 있는 물품 분실은 사역에 치명적일 수 있는데, 이번 일정은 공항에서 차로 이동 후 다시 밀림까지 통나무배로 이동, 1차 진료 후 다시 배와 차를 타고 이동해 2차 진료를 해야 했다. 두 번의 장비 이동과 진료지 세팅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더욱이 밀림에서 대체 장비나 재료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한층 더 철저한 준비와 관리가 필요했다.
말로만 듣던 밀림은 덥고 습하며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하며 낙후돼 있었다. 어둠이 내리면 고요와 적막 그 자체였다. 후텁지근한 더위와 각종 벌레를 견뎌야 했고, 몇 대 안 되는 선풍기도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전력수급 상황에 깨끗한 물이 충분치 않아 최소한만 씻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입에 잘 맞지 않는 향신료와 부족한 식사도 어려움을 더했다. 주로 차와 비스킷만으로 간단히 식사하는 이반족이지만 특별히 손님을 대접한다며 밀림에서 귀한 쌀을 많이 준비해 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보잘것없는 것일 수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값지고 특별하다는 사실을 통해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마음이 따스하고 순진하며, 풍족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와의 만남이 용맹한 전사의 후예와 낙후되고 빈곤한 현실 사이의 절망감에 빠져있는 이반족이 주님을 만나고 영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장거리 이동으로 모두가 지치고 한계를 느꼈었지만, 그들에게 무언가 베풀고 있다는 보람과 즐거움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자 은혜임을 알게 되었다. 믿음과 간구를 통해 어려울수록 지혜를 주시고, 힘들수록 더 이길 힘을 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했다.
이쯤에서 ‘고뇌파’의 일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진료가 끝난 저녁, 원주민들이 사냥을 하고 돌아와 모여 있는 곳에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임문우, 조기수 선배, 우상엽 후배 등과 함께 가 보았다. 그때 그곳에서 그들이 건네는 고슴도치의 특별 부위를 맛보게 되었다. 영영 잊을 수 없는 비릿한 맛의 경험...그때가 바로 고뇌파, 즉 ‘고슴도치 뇌를 맛본 에셀인’의 모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어떤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주님의 깊은 뜻과 한량없는 은혜는 다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사역이 이반족의 삶에 좋은 기억과 구원의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들과 작별하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온 우리 마음속에도 더 좋은 것을 남기셨음을 믿는다. 그것을 앞으로도 면면히 이어질 우리 에셀의 전통으로 만드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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