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료 갤러리

믿음의 나무 에셀

2007년 중국 하얼빈 (15회)

작성자
yonseiessel
작성일
2023-08-23 21:22
조회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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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7년 7월 14일~21일
장소: 중국 하얼빈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김성오 교수, 임문우, 구본찬, 이근형, 조기수, 한원섭, 이기주, 우상엽, 구본진, 최성숙, 김진욱, 도레미, 박용태, 박지현, 이승준, 한윤식, 유성훈, 백윤재, 표세욱, 최희곤, 김태현, 박성우, 손기요, 김지혜, 권혜영, 김지혜, 박유나, 임아린, 구권모, 이경연, 조아라, 한아림





















 

유성훈 (36회 졸업, 스마일어게인치과 부원장)

이제 꿈처럼 느껴지는 중국 하얼빈 선교는 내게 큰 의미였다. 에셀 회장이라는 큰 책임감으로 임했던 선교였기 때문이다. 에셀 사역은 늘 은혜로 충만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지만 하얼빈 선교만큼은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역은 그해 7월 14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었다. 늘 에너지가 넘쳤던 최광식 선교사님이 직접 하얼빈 상황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학교에 오셨다. NGO 단체인 DAWN의 최 선교사님은 단체에 대한 설명과 현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1,500명의 환자에 대해 들려주셨다. 예년보다 확연히 많은 환자 수에 놀랐고, 마음속에서는 설렘과 중압감, 사명감 등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결국 더 많은 기도로 준비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본과 3학년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자마자 첫 기도회 일정을 잡고, 해외진료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무엇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했다. 학생들의 역할은 실행보다는 준비하는 기간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우선 현재 보유한 진료 물품들을 파악해야 했고, 가방에 나누어 담는 작업이 이어졌다. 함께 가는 OB 선배들도 모일 때마다 우리의 짐을 체크해주셨다. 에셀이 어떻게 이렇게 큰 규모의 해외 치과 의료선교를 매년 해낼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준비는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가방의 무게를 맞추는 일도, 가방에 들어갈 물건을 나누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몇 개 분실해도 진료가 가능하도록 가방을 구성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선교사님이 세관 통과의 어려움을 염려했기 때문에 더 많은 기도로 준비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일이 되었다. 전날까지 ‘뭐 빠진 건 없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선교를 떠나는 마음의 부담보다 진료 준비가 끝났다는 해방감에 기뻤고, 발걸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중국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내려두었던 걱정이 점점 크게 다가왔다.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세관 통과를 앞두고 다시 한 번 기도를 했다. 매번 그렇듯이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바로 응답을 해주셨다. 걱정과 달리 세관 통과가 정말 형식적으로 간단히 진행되었다. 하나님이 이 사역을 주관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하얼빈에 위치한 ㅁㅂ학교에서 진료를 했고, 숙소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하얼빈 사범대학 내 호텔이었다. 방마다 에어컨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진료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계에 종종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진료에 차질이 없을 정도로 사소한 문제들이었다. 보존 체어 6개, 치주 체어 2개, 외과 체어 1개로 구성된 진료실은 예년보다 큰 규모답게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매일 새벽에 가졌던 경건회는 마음을 모아 하루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기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중국 선교는 진료지가 두 곳이라 장소를 옮겨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그 많은 장비를 정리하고 다시 설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이 많다 보니 잃어버린 장비가 생겨나기도 했다.

즐겁지만 힘겨운 선교 기간을 보내던 중 한번은 음식 알레르기로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 거의 헬멧을 쓴 것처럼 보일 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져 인근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좀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날이 되었다.

마지막 이틀은 환자가 물밀듯이 밀려와 바쁘게 진료를 마쳤다. 최 선교사님의 예상과는 달리 총 환자 854명이라는 작년 대비 조금 적은 환자를 보았지만 총 진료는 1,124건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우리는 말로만 듣던 731부대를 탐방했다. 1932년에 설립해 1945년까지 생화학무기의 개발을 위해 치명적인 인체 실험을 했던 악명 높은 곳. 주로 중국인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사람을 죽이는 다양한 방법을 산 채로 실험했던 흔적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노를 참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도 찾아가 독립투사의 민족정신을 느끼고 그분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진료하는 동안 내내 날씨가 무척 좋았다. 우리가 서늘한 곳에 있으면 따뜻한 햇살이 우리를 반겼고, 어두운 곳에 있을 땐 맑은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다가왔다. 이런 은혜를 받았던 우리의 진료가 잘 마무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은혜롭게 진료를 마쳤다는 기쁨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하루 일과가 끝날때마다 차안에서 늘 감사의 기도로 함께 했다. 책임감을 가지고 떠났던 선교였던 만큼 많이 힘들었고 걱정도 많았지만, 그만큼의 영적인 성숙을 통해서 주님께 더 다가갈 수 있는 참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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