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료 갤러리

믿음의 나무 에셀

2000년 캄보디아 콤퐁참 (8회)

작성자
yonseiessel
작성일
2023-08-22 19:31
조회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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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0년 7월 6일~12일
장소: 캄보디아 콤퐁참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임문우, 지혁준, 김성태, 박성헌, 지성훈, 강민재, 고형준, 권혁락, 심우현, 오민석, 김경석, 김재욱, 안현철, 한정선, 이동우, 정회훈, 김우진, 허나래, 김민정, 장진희, 임지인



















 

심우현 (28회 졸업, 在英)

나는 다른 선후배님들처럼 많은 해외사역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1998년 인도에 이어 2000년에 캄보디아 때 참여했다. 자주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이 사역이 24년을 넘어 앞으로 더 아름답게 이어지도록, 주님께서 우리가 지치지 않도록 배려하신 한 해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사역지인 콤퐁참은 프놈펜을 통해 들어갔는데, 지금은 직항으로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태국을 경유해야 했다. 차로 이동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선교사님은 그 길이 한국으로치면 1번 국도 역할을 한다고 알려주셨다. 날씨가 두 해 전 사역지인 인도보다는 상대적으로 한결 나았던 터라 큰 고생없이 잘 도착했는데, 숙소에 있는 침대와 에어컨을 보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자던 경험을 떠올리며 짐짓 놀랐었다. 하지만 어떤 돌발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니 방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힘을 내기로 했던 기억이 난다. 밤에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잘했다. 기후도 적절해서 진료지 여건도 좋았다.

아침식사로는 주로 빵을 먹었는데 캄보디아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영향 때문인지 의외로 바게트가 아주 맛있었다. 빵에 질릴 때쯤 되면 같은 기간에 미국에서 온 선교팀에서 컵라면을 주셨는데, 영어가 잔뜩 적힌 해외수출용 신라면 용기를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저녁식사는 거의 호텔 근처 식당을 이용했는데, 매일 다른 음식을 먹었고, 우리
입맛에 맞도록 현지 선교사님이 잘 배려해주셔서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다.

후배들은 선교지에서의 식사 메뉴가 간증거리(?)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도의 총체적인 난관 때문에 당시에는 먹는 음식도 나름 큰 관심사였다. 인도에서는 구본진 선배님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고기볶음 고추장을 나누어 먹으면서 겨우 버티기도 했었다. 한국인은 바게트 빵에도 버터 대신 고추장을 발라 먹는 사람들 아닌가?

진료 사역도 별 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다. 그런데 내가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환자들 중 아이들이 참 많았는데, 소아 진료 중 국소 마취 후 바늘에 캡을 씌우다 실수로 손가락을 찔린 것이었다. 잠시 걱정이 되었지만 진료팀 모두 진심으로 기도해주시고 걱정해주신 덕에 다행히 큰 문제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해프닝일 수 있지만,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와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리해서 진료하다 보면 항상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선배들이 엄격하게 규율을 잡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진료를 준비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모든 진료 사역이 끝난 후 프놈펜 관광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70~1980년대 캄보디아에서는 많은 민중 학살이 일어났었다. 영화 <킬링필드>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프놈펜의 한 박물관에서 당시 자료들, 특히 여러 개의 해골로 만든 캄보디아 지도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다른 해에 비하면 별다른 이벤트나 사건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따른 결과, 계획된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그것은 모두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여러 선후배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해외 선교사역을 이어나가리라 믿으며, 생각날 때마다 에셀을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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