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료 갤러리

믿음의 나무 에셀

2015년 스리랑카 마타라 (23회)

작성자
yonseiessel
작성일
2023-08-24 16:37
조회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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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5년 7월 6일~13일
장소: 스리랑카 마타라
참여대원: 백형선 교수, 김성오 교수, 윤준호 교수, 김성태 교수, 임문우, 이기섭, 박영진, 박경준, 한원섭, 이민형, 박준호, 우상엽, 구본진, 이규화, 유성훈, 유원영, 손효주, 김별이라, 김욱성, 안윤수, 이신애, 임동한, 최혜진, 김현주, 유지흔, 전지훈, 홍석우, 김다영, 이범준, 장한솔, 김지연, 박지성, 정아인, 한유빈, 김수정, 박주연, 김진우, 박원근, 박주완, 윤채린





















 

김별이라 (43회 졸업, 연세대학교치과대학병원 전공의)

2015년 여름, 졸업을 위한 수많은 원내생 진료실 케이스를 잠시 접어두고 나를 포함한 본과 4학년 6명은 스리랑카로 떠났다. 치과대학 학생 13명, 간호대학생 5명, 간호사 1명, 수련의 포함 졸업생 선배님 14명, 가족대원 5명 등 총 40명이 백형선 교수님과 김성오 교수님을 선두로 선교에 나섰다. 밤 비행기를 타고 7월 7일 새벽에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 온갖 진료 장비를 싣고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 달려 이름도 생소한 마하트라에 도착했다.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전의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와 다소 다른 환경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대원들이 다함께 머무를 곳이 없어 몇 개로 숙소를 나눴는데, 에어컨이 없는 것보다 와이파이가 안 되는 것에 당황하며 전파를 찾아 헤매는 학생들이 많았다.

진료지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출발 전에 준비하면서 현지 선교사님들에게서 사진과 도면을 받아보기는 했지만 도로 주변에, 그것도 사방으로 뚫린 길쭉한 T자 모양의 공간에 어떻게 진료장비를 설치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진료의 노하우가 축적된 OB 선배님들의 지도 아래 일사불란하게 체어와 기계들이 설치되었고, 아무것도 없었던 빈 공간에 그럴듯한 치료소가 세워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금방 구름같이 환자들이 몰려들었는데, 이번에는 뜨거운 날씨가 우리를 공격했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야외 공간에서 진료가 계속되자 금방 지치고 체력적으로 힘든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이튿날부터는 진료팀과 백업팀으로 나눠 진행했고, 뒤쪽에 휴게공간을 만들어 과일과 물을 준비해 두었다.

밀려드는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진료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운영 중인) 마취방사선, 일명 ‘마방과’를 두어 필요한 경우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 곳에서 마취를 하고 체어로 이동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그동안 쌓아온 에셀의 노하우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지혜로 힘든 상황을 개선해나가며 날이 갈수록 진료가 더욱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날씨가 덥고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 점심은 현지 도시락으로 해결했는데, 누군가가 발견한 길 건너의 ‘피자헛’은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식후 피자헛에서 즐기는 아이스크림은 이제껏 먹어본 것 중 가장 달고 맛있었다. 도시락에서 탈출해 즐기는 피자와 콜라, 에어컨 바람과 깨끗한 화장실에 다시 사기가 충만해져서 오후 진료에 다시금 힘을 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열악한 환경에도 40명의 대원들 중 크게 아픈 사람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던 것이 큰 은혜였다.

이렇게 5일간의 일정을 마치면서 총 환자 수 954명에 1,084건의 진료 건수를 기록했다. 본과 2학년 때인 캄보디아에서는 석션 기계를 잡는 것도 어색했고, 3학년인 베트남에서는 처음으로 마취와 수복 치료를 경험해 보았다면, 졸업을 앞두고 간 스리랑카 진료는 선배님들을 지켜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능적인 배움뿐 아니라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상담과 신앙인의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치과의사로서 일을 하는 입장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더운 여름에 소중한 휴가와 경제적 수익을 헌납하고, 아니 오히려 자기 돈을 내서 미지의 나라에 매년 의료선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이 더욱 멋지게 느껴진다.

지금은 사진들을 찾아가며 스리랑카 후기를 쓰고 있는데, 솔직히 그 무엇보다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죄송하게도 치열한 진료사역이 아닌 ‘스리랑카의 밤하늘’이다. 스리랑카의 넷째 날 밤, 별을 촬영하러 간다는 진료부장을 따라 나를 포함한 학생들 몇이 숙소에서 가까운 해변으로 산책을 가게 되었다. 그때 밤하늘 가득히 쏟아져 내릴 듯한 수많은 별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은 서울의 밤하늘을 볼 때도 스리랑카가 떠오른다. 졸업 전 내가 되고자 했던 치과의사의 모습, 그 당시 나의 고민과 목표, 선배님들의 따뜻한 조언과 풍성한 주님의 은혜... 모두모두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새길 것이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추억이 많은데 글솜씨가 부족해 아쉽기만 하다. ‘에셀 배지’를 배부해 핑크와 블랙 멤버로 나누었을 때 블랙을 동경했던 일, 매일 아침 진료 시작 전부터 진행되던 현지 국회의원 뿌티끄의 일장 연설, 숙소 화장실 변기에서 엄청난 괴생물체가 출현했던 일, 아침저녁 숙소 식사시간에 항상 학생들에게 먼저 줄을 양보하시던 선생님들의 따스함,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며 소리 높여 찬양했던 시간들... 모두 다 감사하고 소중하다. 언젠가는 나도 자녀들을 데리고 어엿한 치과의사로 다시 여름 단기선교에 참여할 날을 열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긴 시간 동안 에셀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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